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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풍경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본문
미륵사지 석탑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백제의 석탑으로
미륵사지는 절터이다.
소재지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번지이며, 국보 제1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미륵사지는 1966년 6월 22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왼쪽 미륵사지석탑, 오른쪽 동원 9층석탑

미륵사지 석탑
원래는 9층이었으나 일제에 의해 파손되어 6층으로 남아있는 형태

윗쪽에 파손된 형태로 남아있다

미륵사지 석탑의 원래 9층을 복원하여 만든 9층석탑
미륵사지 서탑을 토대로 복원한 동탑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잘 알려진 미륵사(彌勒寺)의 터 ‘미륵사지(彌勒寺址)’가 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 2년(601)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당시 백제의 절로는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절이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미륵사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크게 번성하였으나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점차 쇠락한 것으로 추정한다. 미륵사지는 1962년에 사적 제150호로 지정하여 관리하였지만, 현재는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글ㅡ 지역 N문화





오른쪽 당간지주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던 익산 미륵사는 무왕(武王, 600-641) 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는 전형적인 1탑1금당의 백제식 가람배치와 달리 세 개의 탑과 금당 등으로 구성된 3탑3금당의 독특한 배치형식이다. 이 미륵사지 석탑은 세 개의 탑 중 서쪽에 위치한 탑이다.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석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이다.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있었다. 창건당시의 정확한 원형은 알 수 없으며, 17~18세기 이전 1층 둘레에 석축이 보강되고 1915년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운 상태로 전해졌다.
석탑의 1층 내부에는 ‘十’자형 공간이 조성되어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출입이 가능하며, 탑의 중심에는 여러 개의 사각형 돌을 수직으로 쌓아올린 기둥(심주)이 4층까지 연속된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석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며, 2009년 1층의 첫 번째 심주석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의 기록을 통해 639년이라는 석탑의 건립연대가 명확하게 밝혀졌다.
석탑은 1998년 구조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이듬해 해체수리가 결정되었고 2001년 해체조사에 착수하여 2017년 조립공정이 완료되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고대의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충실하게 잘 보여준다. 또한 고대건축의 실제 사례로써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우리나라 불탑건축 연구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출처ㅡ 국가유산포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