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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풍경
태화루 옅은 해넘이 본문
해질녁에 서둘러 십리 대나무숲에서 태화루로 이동해서
해가 막 넘어가는 것을 겨우 볼 수 있었는데요
아쉬운 옅은 빛을 보여주네요
태화루 아래 담장에서 태화강을 바라보았더니 노을빛이 은은하더군요
십리대밭교. 뒤로 아래 대나무숲이 길게 이어져 있답니다
이 곳 경치가 고요해서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산아래로 해가 지는데 건물이 있어 아쉽더군요. 태화루 아래 서서...
태화루가 동절기 5시에 폐문하여 6시 넘은시각 누각에 올라갈 수 없어
담장 부근에서 태화강을 내려다보다
태화루, 태화강, 태화교 출처 ㅡ울산시티투어
출처 ㅡ울산시청.
왼쪽 풍경이 태화루.
용금소 ㅡ지금의 태화루 아래쪽
에쓰-오일이 태화루 건축비 전액인 100억원을 후원해 만들어졌답니다. 2014년.
울산에 에스오일 정유공장이 지나가다보니 보였습니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정유공장 등
크고 작은 기업들이 많아 공업도시임을 실감했습니다.
울산이 우리나라에서 1인당 국민소득 1위를 줄곧 차지했었죠
반면에 공장이 있는 지역은 복잡하고 공기는 좋지 않아보였습니다.
태화루는 신라 선덕여왕때 건립됐다. 밀양 영남루와 진주 촉석루와 함께 영남 3루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소실됐다가 복원됐다.
저는 촉석루와 태화루는 만났고 영남루는 못 봤습니다
성종이 당시 개성에서 울산 태화루에 내려와 잔치를 한 큰 사건. 올라가 한달만에 붕어했답니다
태화루는 큰고기가 잘 잡혔었다고 하는데 성종이 큰물고기 (돌고래)가 잡힌것을 보고 갔다고 하고 태화루에서 그 당시 문인들이 시문을 적곤 했는데,
대나무숲 이야기도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이 일대가 그 당시에도 대나무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태화루 관련 기사
태화루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년~647년) 당시 당나라에 유학 후 돌아온 승려 자장에 의해 창건된 태화사와 함께 건립되었다. 태화루는 태화강의 용금소 북쪽 절벽 위에 지어졌는데 임진왜란이 지나면서 소실되었다가 400년이 훌쩍 지나서 2014년에야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되었다. 용금소는 태화강 물이 휘돌아 치면서 암벽을 깎아 만든 절벽 밑의 수심이 깊은 부분인데 예전에는 매년 익사자가 생기는 무서운 곳으로 인식되었다. 용이 산다는 속설에 따라 가물 때는 기우제를 지내는 등 고대로부터 울산의 명소이었다. 자장이 중국의 태화지에서 만난 용이 신라에 살고 있는 자기 아들의 식복을 빌어달라 부탁하였기에 용금소를 황룡연(黃龍淵)이라 하였다. 따라서 용금소는 태화루와 한쌍으로 연결해 그 의미를 새겨야 하지만 치수가 잘 된 현재의 태화강에서는 아련한 추억 속에 잊혀지고 있다.
Only Our Rivers Run Free (강물에 묻어 봄이 온다)/James L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