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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풍경
피천득 산책로를 걷다가 본문
지금으로부터 114년전에 1910년에 태어나 일제시대, 광복을 맞고 6.25 전쟁을 겪었으며 2천년초 밀레니엄 시대 2007년 까지 삶을 살았던 피천득 선생의 인생을 돌아보니 참으로 인생 잘 사셨다는 생각을 했고 이 보다 더 잘 살 수는 없다면서
시인을 돌아보았습니다
반포천을 걷다보니 고 피천득 작가의 시와 글이 몇 작품 놓여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피천득 시인을 자세히 찾아보았네요
피천득( 1910~2007) ㅡ시인, 수필가, 영문학자ㅡ 대해서 찾아보니
아버지가 구한말 군부주사를 지낸 관료출신인데 종각에서 종로 5가 땅까지, 강남에서는 양재동 땅에 이르기까지 소유한 대 부호의 외아들이었으나 6살 때 아버지가, 9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삼촌이 키워주었다 합니다.
그의 호는
금아 琴兒·'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 라는 뜻으로 이광수가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춘원 이광수의 권유로 16살 1926년 중국 유학을 했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1923~1926년 (경기고 졸)
상하이 후장대학교 영문학사를 나오시고
26년 부터 37년 사이 문인들과 독립운동가들과 친분을 쌓았고 1930년 신동아에 '서정소곡'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54년 미 하버드에서 영문학을 연구하고
강원도 춘천시의 성심여자대학교에서 출강하기도 하였답니다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교수 1946~1974년까지 하셨네요.
제9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 199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1991년)
반포주공에서 27년간 사셨다구요.
피천득님이 반포천을 늘 걸으셨다고 해서
'피천득 산책로' 라고 부르네요
작품으로 인연, 은전 한 닢, 오월 등이 있답니다
롯데월드에 가면 피천득 님의 기념관이 있답니다.
인연(因緣)
피천득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일 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들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일어난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한다
사람과의 인연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인연으로 엮여있다.
그리워 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피천득 수필 인연 전문
수십 년 전, 내가 열 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도쿄(東京)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M 선생 댁에 유숙(留宿)을 하게 되었다. 시바쿠(芝區)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書生)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一年草)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이트 피이를 따다가 화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이트 피이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일본 성심 여학원 소학교 일 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학교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學部)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내가 도쿄를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빰에 입을 맞추고, 그녀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그 동안 나는, 국민 학교 일 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도쿄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도쿄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M 선생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도 같이. 그 때, 그는 성심 여학원 영문과 3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보를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聯想)한다. '셸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코와 나는 밤 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제 2차 세계 대전이 있었고,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통에 어찌 되지나 았았나, 남편이 전사(戰死)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도쿄에 들러 M 선생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M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이 되어서 무엇보다고 잘 됐다고 치하(致賀)하였다.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뽀족 지붕에 뽀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 같이 시들어 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오월ㅡ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 오월 예찬中에서
은전 한, 닢 작품도 읽어보았는데
중국 거지가 은전 한 닢을 소중하게 여기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추천도서 Skylark 종달새 ㅡ피천득
아침 햇빛이 조롱에 비치면 그는 착각을 하고 문득 날려다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쓰러지기도 한다.
설사 그것이 새장 속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들을 모르는 종다리라 하더라도,
그의 핏속에는 선조 대대의 자유를 희구하는 정신과 위로 위로 지향하는 강한 본능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피천득 수필집 「인연」(민음사, 2018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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