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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대성동 고분군 본문

경상도

김해 대성동 고분군

미소^^* 2026. 3. 4. 15:05

유네스코 세계유산 (23년 9월 지정)
사적 341호
1~5세기에 걸친 지배집단의 무덤 자리로 고인돌을 비롯해 가야의 여러 형식 무덤이 발굴됐다.
유물은 바로 옆 고분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대성동(大成洞) 고분군은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구지봉(龜旨峰)과 금관가야 교역과 정치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봉황대(鳳凰臺)에 연접한 얕은 구릉에 위치한다. 동편으로 인접하여 수로왕릉(首露王陵)이 위치하고
예전 고김해만 항구의 중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은 공설운동장의 건설과 택지 개발, 도로 건설 등으로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왜꼬지'라 불리는 구릉을 중심으로 많은 무덤들이 남아 있다.

아주 키가 큰 두 그루의 나무가 서 있는데
눈에 띄어서 나무를 계속 바라보면서 경사진 고분군을 올랐다.
두 나무는 팽나무라는데 빈가지만 남아서
무슨 나무일까 궁금했었다.

오른쪽 아래에서 위로 오르는 방향
겨울이라 빈가지만 보이는데 잎이 푸른 팽나무
ㅡ류 푸르메님ㅡ

ㅡ김해시 제공ㅡ
저는 오른쪽에서 올라갔습니다.
나무 하나가 가려 나오지 않았네요

    저 위 한사람이 작게 보이니
나무의 키가 얼마나 큰 지 가늠하겠다.
   하나의 팽나무를 지나쳐서 위에
가지만 보이고 또다른 팽나무 한 그루 보인다

산 언덕이 길이 300 m 높이 20m.
올라가니 네모난 표시 해놓은 곳이 고분군이다.
1,2,3 고분군을 표시해놓고
출토된 유물사진 과 설명이 씌여있다.

 
 

 

 


고분군에 올라오니 보존적 가치가 큰 이곳이
그 옛날 가야문화가 번성했던
흔적이 나온 곳이구나 짐작하게 됩니다.

내려다보이는 김해의 뷰가 장관이에요. 시원스럽고 멋집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가치에 공감이 갔어요.

고분군 윗쪽인데 내려다보이는 뷰가 멋집니다 .오른쪽 사람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무덤군이라는 생각이 안 들고
낮은 산에 올라온 느낌이 많이 듭니다

김해 대성동 2호 무덤 발굴 광경과 전경.
출처 ㅡ한국미의 재발견

대성동 고분박물관.
낮은 쪽 한켠에 큰 건물이 보이는데 고분군 박물관인지 몰라서 가보지 못하고 왔네요.

65만㎡의 부지에 토기 50점, 고지도 1점, 전시복제품 181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보관관리관청인 경상남도로부터 위임받은 국가귀속유물 1,493점을 관리 · 보관하고 있다. 중요 유물로 김해 대성동고분46호 출토 동복과 옥장 등 대성동고분군 3·4차 발굴유물들과 김해 율하리 · 본산리유적 출토유물, 그리고 김해부내지도 등이 있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가야는 우리 고대사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입니다. 문헌과 유적, 유물이 적고 6세기 중엽 신라에 병합되어 가야는 부족국가들의 연맹체 정도로만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제, 신라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국가입니다.
보기 드문 엄청난 철기와 토기의 나라이자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제4의 제국이 바로 가야입니다.

그 중에서도 금관가야는 당시 가야 연맹을 이끌던 중심이였습니다. 지금의 경남 김해 땅입니다. 김해는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가야 500년 역사의 고도(古都)였던 김해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역사박물관입니다.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과 멀리 인도에서 건너온 수로왕비의 능이 있고, 수로왕 탄생 설화가 깃든 구지봉, 도시 곳곳에 순장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분이 있습니다. 또 '김해토기'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원삼국시대 토기는 김해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역사가 오래 된 만큼 여기에 서린 설화와 전설도 무궁무진합니다.
| 출처 : 아시아경제 |



이곳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차에 걸친 경성대학교 박물관의 학술 발굴에 의하여 수많은 유물이 묻힌 대형 덧널무덤과 여러 무덤들이 중첩된 양상이 밝혀지면서 주목을 받았고, 조사 결과 이곳이 가야의 맹주로서 당시 국제 교역의 중심이었던 금관가야의 지배층이 묻힌 곳임이 밝혀졌다.

또한 이후 주변 지역의 조사가 이어지며 인근 구지로 고분군, 공설운동장부지 발견 무덤까지 연계되는 대규모 고분군으로 그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무덤을 중심으로 한 2∼6세기 금관가야의 집단 묘역으로 밝혀졌다.

입지 조건이 좋은 구릉의 능선부에는 왕묘와 이에 상응하는 지배자의 무덤이, 경사면에는 보다 신분이 낮은 자들의 무덤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특히 금관가야의 지배계층 무덤으로 보이는 대형 덧널무덤에서는 덩이쇠[鐵鋌], 갑옷, 큰칼[大刀] 등의 많은 철기 유물과 후한대의 중국제 거울을 비롯하여 일본의 고분에서 보이는 통형동기(筒形銅器), 파형동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가야 지배층의 면모가 드러났을 뿐 아니라 당시 연안해로를 따라 교역한 한·중·일 삼국간 문물 교류 상황을 밝히는 데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그동안의 발굴 성과를 정리하여 보여주는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글 ㅡ출처 한국 미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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