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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풍경
선정릉 본문
신라나 백제의 화려한 왕릉도 많은데 조선의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전세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500년간 한 왕과 왕비의 릉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왕릉이기 때문입니다
전체 42기의 왕과 왕후의 릉 중에서 2기의 릉은 북한에 있고
나머지 40기는 남한에서 모두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각 능의 주인들의 기일이 되면 종친들이 찾아와 제사를 지내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선정릉<사진 자료>
왼쪽 서쪽은 성종대왕 릉, 동북쪽은 정현왕후 릉이다
아래쪽은 중종의 릉, 정릉
정릉<사진 자료>
홍살문과 정자각 릉이 일직선상에 있는 구조
예를 중시하고 기록이 살아있는 조선왕조 답게 능을 관리하는데 엄격한 예법이 있답니다
1.진입공간; 왕릉의 관리와 제례를 위한 공간으로 재실이 여기에 속하는데
제례에 앞서 제관들이 미리 도착하여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입니다
2,제향공간;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하는 영역으로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능에 대한 역사는 물론 제사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문서로 보관을 했답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조선 의궤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 이기도 합니다
조선은 이미 600년 전부터 사건 기록의 중요함을 알고 있었던 듯
모든 일을 문서로 작성하고 유지하였는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자료를 찾을수 있는
귀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오른쪽 보이는 건물이 정자각, 가운데 성종과 정현왕후의 비석이 세워진 비각입니다
왼쪽은 수복방입니다
왼쪽문이 홍살문-붉은 기둥 두개를 세우고 위에 살을 박아 신성한 구역임을 알리는 문이다
배위 <사진 자료 -김우>
돌(박석)이 깔린 길을 참도라 하는데 오른쪽에 네모난 돌, 그것이 "배위"라고 한다
홍살문을 걷기 전에 오른쪽에 상주인 임금은 (배위) 라는 돌 위에서
능을 향해 4배를 올리며 도착을 알렸다고 합니다
4배 후에는 능의 주인이 내려와 참도를 같이 걷는다는 의미입니다
가운데 보이는 정자각 왼쪽으로 성종의 릉이 있는데
보통 정자각 뒤로 봉분에 오르는 경사진 언덕 중앙에 릉이 있는 것과 달리 측면에 있는데
그것은 동원이강릉이기 때문이다
정자각 앞에 들어가는 박석이 깔린 곳의 왼쪽은 "향로"로
제향시 혼령을 위한 향이 지나가는 길이고
오른쪽의 낮은 길은 제향을 지내러 온 임금이 지나가는 길 "어로"이며
이 박석이 깔린 길을 참도라고 한다
임금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오른쪽 어도로 걸어가라고 한다
왕릉은 가까이 갈 수 없고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게 되어있다
<자료 사진>
릉 바로 안쪽에는 병풍석이 둘러쌓여있고
병풍석 바깥쪽으로 난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종대왕 릉
3.능친공간:왕과 왕비의 봉분이 있는 성역공간으로 상주인 임금은 이곳에 오를 수 없습니다
이 영역은 순수하게 능의 주인인 신의 공간입니다
성종은 할아버지 세조의 뒤를 이어 작은아버지 예종이 제8대 임금으로 즉위할때만 하더라도
차기 왕위와 관련이 없는 듯 보였는데
그러나 예종이 재위 14개월만에 승하하자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과 친형인 월산대군을 제치고
13세의 나이에 조선의 제 9대 임금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그 배후에는 세조의 책사였던 한명회와 할머니 정희왕후의 합의가 있었고
훗날 성종은 친형인 월산대군을 위해 풍월정 시를 짓고,
장인 한명회를 위해 압구정 시를 지었는데
여기서 한명회의 정자인 압구정이 등장을 하는 것으로 보아,
압구정에서 가까운 이곳 선릉도 처갓집과 모종의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강남에 일찍 정자를 지었던 한명회는
역시 시대를 뛰어넘는 권모의 대가인 듯 합니다
이곳 선릉의 땅값만 약 7조 3천억 (2014년 추산)나갈 정도이니
성종은 장인 덕분에 왕위에 오르고
역대 조선의 임금중 가장 비싼 땅에서 영면하게 되었군요
그러나 이곳 선릉의 현재 안주인은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도,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도 아닌 계비 정현왕후입니다
정현왕후는 바로 중종의 어머니입니다,
선릉은 서쪽언덕에 성종대왕을, 동쪽언덕에 정현왕후를 모신 구조라
홍살문과 장자각은 두 능의 가운데 하나만 위치합니다
이런 형태를 동원이강릉이라고 합니다
수복방
비각
비각 안쪽에 조선국,성종대왕, 정현왕후의 비석이 있다
조선의 제9대 국왕인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70~1494)은 그 묘호(廟號)가 말해 주듯이
조선 왕조의 통치체제를 안정적 기반에 올려놓은 임금이다.
성종은 세조의 큰아들인 의경 세자(懿敬世子)의 둘째 아들로서,
1457년(세조3), 경복궁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인수대비(仁粹大妃) 한씨(韓氏)이다.
조선왕조의 정치제도를 완성한 군주, 성종 [-成宗]
성종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무난히 자랐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 강해 경연과 홍문관을 만들었고,
권력 균형을 위해 사림 세력을 대거 등용했다.
세조때 편찬한 『경국대전』이 성종 때 완성되었고
성문법에 기초해 나라를 운영하게 되어
조선 500여 년의 통치체제를 확립하였다
하지만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문제가 되어 왕비 윤 씨의 질투를 샀고
그 과정에서 윤 씨가 폐서인이 되었다
성종 - 나라 운영은 잘 이루었지만, 집안 경영은 잘 하지 못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자각
제향을 지내는 곳으로 모양이 정(J )를 닮아서 정자각이라 하고
지붕은 추모를 위한 건물에는 맞배지붕을 많이 한답니다,
옆에 계단이 두개가 보이는데
왼쪽은 능의 주인이 신이 다니는 신계, 오른쪽은 어계...
정자각 안에서는 밖이 보이는데 신로는 릉에 연결되어 있다
정자각 오른쪽에 수복방이 있는데
이곳은 능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거처입니다
선릉에는 정자각 왼쪽에 수라간이 있는데
재실에서 준비한 음식을 가져와 데워서 정자각에 올렸다고 합니다
정문쪽(정릉)으로 가는 길
초록숲이 싱그럽기만 하다
숲속에서 삼림욕하고 있는지
키가 무척이나 큰 소나무들이 하늘 향해 서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
나무의 수령은 모르겠고 선정릉은 500년 이상 지났다
이 길을 걷는데 간간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다니고 숲속은 아주 조용하며
새들이 짹짹거리고 있었다
경운기 한대가 탈탈 거리면서 내려가고 있었는데,
이곳의 삼림을 관리 하고 있다
선릉 정현왕후 릉으로 가는 산책로
가는 길에 늠름한 소나무가 무성하다
성종의 제2계비 정현왕후의 릉
이곳은 성종의 능과는 달리 병풍석이 없으며 난간석만 두르고 봉분도 낮다
왕후의 릉은 가까이에 다가가 릉을 볼 수 있었다
왕과 왕후의 차이인가?
문인석과 무인석이 좌우로 둘씩 서있고
동물석물이 지키고 있다.
신로가 쭉 아래로 이어져 있는데 이길 위로 걸어가는 길은 아니고 옆으로 해서
따라 내려가면 성종대왕 릉이 나온다
선정릉 정문에서 정릉쪽으로 가는 길
중종의 능,,, 정릉
정릉에는 참도 입구 오른쪽에 배위가 없는데 이것은 원래엔 있었는데 없어져서 라고 합니다
중앙에 정자각 뒤로 중종의 릉이 있다
정릉 정자각 오른쪽에는 비각이 있으며
선릉처럼 좌우에 수복방 수라간이 없다
계단 두개가 보이는데 왼쪽은 신도로 계단 난간이 둥글고 더 보기 좋고
오른쪽은 어도로 임금이나 사람들이 다니는 길입니다
제향이 끝나면 상주인 임금은 정자각의 왼쪽 계단을 홀로 내려와 속세로 돌아갑니다
능의 주인인 신이 내려오는 계단은 없습니다
능의 주인인 신은 정자각 뒷문으로 나와 신도를 걸어 자기집인 능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입니다
중종의 능... 이곳도 멀리서만 볼 수 있고 가까이서 볼 수 없이 통제되어 있다
앞에 보이는 네모난 돌은 예감이라 부르고 제향을 지내고 비문을 태우는 곳이다
정릉은 중종의 능으로 원래는 경기도 고양의 서삼릉에
장경왕후 윤씨와 함께 동원이강릉으로 있었으나
문정왕후가 자신의 사후에 함께 묻히길 원해서 1562년 이곳으로 옮겨졌으나
홍수로 항상 이곳이 물에 잠겨 풍수상의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명종이 어머니인 문정왕후를
지금의 노원구에 있는 태릉에 모셨다
'
비석을 보관하는 건물입니다
정자각 안에 문에서 밖에 중종의 능이 보인다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인 재실입니다
종9품 능참봉이 이곳을 관리한다고 합니다
꽤나 큰 한옥구조로 이곳에서 제사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500여년 된 은행나무라 합니다
성종대왕과 중종대왕의 업적을 기록한 곳이고 옆에는 관리사무실이 있습니다
2017.6.16, 금
선정릉
삼성동 이곳은 그리 멀지 않음에도 한번도 이곳을 가보지 않았는데
작년 가을에 이곳을 갔으나 월요일이라 휴관일이라
입장을 못하고는 봉은사로 갔었다
그리고는 지난 금요일에 운전면허증 갱신을 하게 되어,
오는 길에 이곳을 가보았다
선릉과 정릉이 있는 곳인데 선정릉이라 하고
세개의 능이 있다하여 삼릉공원이라 부른다
강남구 삼성동의 오아시스 같은 숲속길,,,
강남구 삼성동쪽은 공원 같은 녹지가 없어서 쾌적하지 않은데
이곳은 강남 한복판에 이렇게 호젓한 솔숲이 있어
강남 직장인들에게 휴식처가 되고 있다
선릉은 조선의 9대 임금인 성종대왕 능(1495년)으로 만들어졌고,
계비 정현왕후 윤씨 능(1530년)이 옆에 반대 방향에 안장되었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또 11대 임금인 아들 중종의 (1544년)정릉이 있다
이 세 능을 선정릉이라 부른다
선릉은 왕과 왕비가 같은 능역 안에 있기는 하지만 언덕을 달리하는 동원이강릉이다
서북쪽에 성종 무덤이, 동북쪽 숲에 정현왕후의 묘가 있다
임진왜란때 왕릉이 파헤쳐지고 재궁이 불태워져 현재 릉안에
실제 시신은 없다고 하며 그럼에도 도심 한가운데 보존되고 있어 이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빌딩들이 숲을 이루는 도심속 숲
강남 한가운데에 나무그늘 쉼터를 제공해주고 있다
선정릉을 한바퀴 도는데
약 3.5킬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정문에 들어서서 왼쪽길을 따라가면 선릉, 오른쪽길을 따라가면 정릉이 나옵니다
저는 오른쪽길을 먼저 갔는데 정릉(중종의 릉)은 정면으로 아주 반듯하게 보입니다
정릉에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선릉 가는 길이 나오고
정현왕후의 릉이 보이며, 이곳은 가까이 접근이 가능해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걸어 내려가니 성종의 릉이 나옵니다
성종의 릉은 정자각에서 정면으로 바로 보이지 않고 좌측에 있습니다
이것은 왕후의 릉과 반대쪽으로 양쪽에 있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선릉을 먼저 가려면 정문에서 왼쪽으로 가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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