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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풍경
아산 현충사 본문
아산 하면 떠오르는 장소가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모셔져 있는 현충사인데...
현충사를 걸어들어가는 내내
오래된 수령의 고목과 소나무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있고
조용하고 적막한 현충사의 분위기에
마음도 차분해지고 이순신 장군을 다시 기억해봅니다
우리집 큰아이는 7살때 유치원에서 이곳을 견학왔었다고 해서 알고 있었고,
역사를 좋아하는 남편과 작은아이는 이순신의 고향은 아산이라며
장군 이야기를 하며 관심을 갖습니다
현충사 본전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중앙에 정려앞 느티나무 300년 수령
정려
조선시대 충신이나 열녀 효자에 임금이 내린 현판을 마을입구에 걸어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본받게 한 정문
이 정려에는 충무공 이순신, 강민공 이완, 충숙공 이홍무, 충민공 이봉상,
효자 이제빈의 현판이 걸려있다
연못
거북이 등무늬가 있는 연못
현충사 입구의 고목
소나무가 입구 올라가는 초입에 양쪽에서 반겨주는 듯
충의문
현충사 본전
내려가는 길 - 우리가족
이순신 고택과 활터는 본전과 가는길이 달라서 못보고 왔네요
구 현충사 본전
이순신 기념관에 있는 자료들
난중일기 초고본-7년동안 쓴 기록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祠堂)이자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는 사당
1967년 사적 제155호 '아산(牙山) 이충무공 유허(李忠武公遺虛)'로 지정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현충사로 잘 알려져 있다.
이순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은 현충사 외에도 전국의 여러 곳에 위치해 있다.
전라 좌수영이 있던 전남 여수시의 충민사, 통제영이 있던 경남 통영 한산도의 충무사 등이 그 예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후 1598년에 충무공 이순신이 노량 해전에서 전사(戰死)하게 되면서
1706년(숙종 32년)에 지방 유생들이 충무공의 숭고한 호국 정신과 애민 정신을 기리자는 뜻에서
사당을 세울 것을 조선 조정에 건의하였다.
이듬해인 1707년 숙종의 어명하에 지금의 아산에 있는 이순신의 생가에
충무공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기리고 나타낸다는 뜻에서 '현충(顯忠)' 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워지게 되었고
이후에는 충무공의 공로와 업적을 기리는 성역(聖域)으로 거듭났다.
참고로 현충사라는 현판은 숙종이 직접 내린 것.
1865년(고종 2년)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국왕 섭정을 맡았던 흥선대원군이 전국 서원철폐명령을 내리게 됨에 따라 현충사도 철폐되어 존폐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일부 유생들이 충무공의 충성심에 대한 모독과 패륜 행위를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지만 대원군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원 철폐를 강화함에 따라
현충사는 이를 계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한때 사라지기도 했었다.
일제 치하에 충무공 종손(13대 종손 이종옥)이 가난해서 고택과 묘소가 포함된 임야, 현충사 부지가 경매에 넘어갔는데 1931년 5월 동아일보의 보도를 통해, 뜻 있는 인사들이 이 충무공 유적 보존회를 조직하고 동아일보사와 협력하여 전국 각지에서 총 16,021원 30전의 성금을 연 2만 명의 인원으로부터 모금, 빚을 갚고 남은 금액으로 1935년 6월5일 현충사 낙성식과 영정 이후 봉안식을 하고 현충사 사적비를 건립한다.
이후 박정희정권 하에서 이순신 장군의 성역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1962년에는 충무공이 생전에 사용했다는 유물들을 수집하여 전시하는 '유물 전시관' 이 개장되었고, 1966년에는 현충사의 경역(敬域)을 확장하여 1967년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본전(本殿)과 충무공이 무과 시험을 봤던 시절 지냈었던 가옥과 활터가 개장되기도 했다.
이후엔 2011년 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을 기념하여 현충사 안에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는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이 개장되어 현재에 이른다.
출처 네이버 나무위키
큰사이즈 사진은 제가 담은 사진이고
이순신기념관에 전시된 것들은 자료도 있습니다
이곳도 봄가을에 가면 고적한 아름다운 현충사를 돌아볼 수 있겠네요
배롱나무꽃 피는 시기에 가면 꽃분홍꽃이 흐드러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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