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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풍경

따오기 돌아오다 본문

궁궐 ,전통 미술 조각

따오기 돌아오다

미소^^* 2023. 4. 19. 05:00


물왕호수 포스팅 하다가
근처에 동요 따오기 작사가 한정동선생 묘와 동요비가 시흥 물왕호수 주변
운흥산 아래 있다고 해서 따오기를 찾아보았답니다.
따오기는 황새목 '저어새과' 라고 하네요.한국 전쟁때 서식지가 파괴되고 그후 1979년 완전 멸종 , 중국에서 7마리가 발견되어 일본과 한국이 야생 부화에 성공 42년만에 21년 7월 방사된 따오기가 우포늪에서 첫번식을 하여
따오기를 볼 수 있었고 현재 300여 마리가 있는데 매해 50마리씩 방사한다고 합니다
따오기 사진출처 corel ,글 두산백과
따오기 동영상 Ebs 프로그램...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 가져왔답니다
따오기가 40년만에 우포늪에 돌아왔다는 재미있는 영상, 10분

출처 corel 두산백과


22.10 동영상
제가 보려고 자료를 모아보았습니다

동요시곡 < 따오기 >
신요칼럼 정우동

                              한정동 작사 / 윤극영 작곡

 1. 보일듯이 보일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드뇨
내어머님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2. 잡힐듯이 잡힐듯이 잡히지 않는
따옥 따옥 따옥소리 구슬픈 소리
날아가면 가는 곳이 어디이드뇨
내어머님 가신 나라 달 돋는 나라

따오기 우는 소리는 한없이 처량합니다. 그것도 저녁놀이
질 무렵 시골 냇가에서 들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주인공은 애절한 따오기 소리를 통해 다시 돌아오
지 못할 나라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그러한 상상의 세계를
넘어서 달나라로 별나라로 해나라로 날아가 꿈에서만 보
던 어머니와 다시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 따오기에 대하여 *
한자어로는 주로(朱鷺)·홍학(紅鶴)이라고 하며
학명은 Nipponia nippon (TEMMINCK)입니다. 시베리아 우수리
지방에서 중국 동북 지방(만주)과 서부 산시성(山西省)에 걸쳐
분포하며, 우리 나라에는 겨울새로 도래하여 월동합니다.

몸길이는 77㎝이며 부리가 아래로 굽어 있습니다. 머리는 흰색
이나 이마·눈앞·눈주위·목에는 붉은 피부가 노출되어 있다. 뒷
머리의 깃털은 연한 등홍색을 띤 관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등·
어깨· 허리 및 윗꼬리덮깃은 흰색이나 깃털의 기부는 연한 등홍
색입니다. 날개깃·날개덮깃 및 꼬리는 흰색이며 연한 등홍색을
띄웁니다. 가슴·배·옆구리는 흰색이며 부리의 기부는 적색, 그
나머지는 흑색입니다. 다리는 짧은 편이며 적갈색입니다. 번식
기의 생식깃은 관우(冠羽)·목·등·어깨깃·날개덮깃 등이 회흑색
을 띠기도 합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를 답사한 폴란드의 조류학자 타크자노우
스키(Taczanowski)는 서울 근교에서 50마리 정도의 따오기떼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영국의 캠벨(Campbell)
은 우리나라에서 봄과 가을에 흔히 볼 수 있으며, 쉽게 사냥총의
밥이 되는 새라고까지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개체수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1966∼1978년
사이에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서 간혹 목격된 한 마리를 비롯
하여 세계적으로 20여 마리가 확인되어 있을 뿐입니다.

[민속과 상징]
우리 나라의 설화 속에서는 울음소리가 아름답지 못한 새로
나타납니다. <황새의 재판>이라는 설화는 꾀꼬리와 따오기가
서로 목청 자랑을 하다가 황새에게 가서 판결을 받기로 하였
는데, 따오기가 개구리를 잡아 황새에게 뇌물로 쓴 까닭인지
황새는 꾀꼬리 소리를 간사하다고 하고, 따오기 소리를 점잖은
장부의 소리로 평했다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동시 <따오기>는
한정동선생이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입
니다. 그 당시는 제목이 <당옥이>였고, 4련으로 된 동시이
었습니다. 윤극영선생의 곡으로 더 유명한 이 동요는 일제
강점기때 신음하는 조선인의 애환과 민족감정을 표현한 것
으로 간주해 이 노래의 가창과 반포를 금지시켰고, 조국의
광복 후에 부활하였습니다.

☞ 작시자 한정동(韓晶東, 1894~1976) 선생은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한 아동문학가로서 시인입니다.
호는 서학산인(棲鶴山人). 성수(星壽) · 백민(白民)입니다.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1세까지 한문을 공부하다가
12세 때부터 신학문을 배웠습니다. 1918년 평양고등보통학
교 졸업 전후 평양시청의 서기를 거쳐 진남중학교 교사로
재직했습니다.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따오기>가 당선되어 신춘문
예를 통해 등단한 최초의 아동문학가입니다.
특히, <따오기>는 윤극영(尹克榮) 선생의 작곡으로 광복전
부터 널리 애창된 동요입니다. 1936∼1939년까지 조선일보 ·
동아일보 진남포 지국장 겸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그뒤에
진남포 영정초등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1950년 월남한 이후 부산국제신문사의 기자(1951∼1952)를
지내고, 서울 덕성여자고등학교 교사(1954∼1961)를 역임
하면서 한때 한국아동문학회회장의 중책을 맡았습니다.
1968년 노래동산회에서 시상하는 '고마우신 선생님상'을
수상하여 이 상금과 그동안 모아둔 원고료로 1969년 '한정동
아동문학상'을 제정하여 후진들의 길을 터 주었습니다.
현재 경기도 시흥시 물왕저수지 근처에 있는 남대문교회 묘역
에 그의 묘가 있고, 그 옆에 문인들이 세운 <따오기 동요비>
가 있습니다.

韓선생의 주요작품에는
동요로 <어머니생각· 고향생각· 갈닢배· 가을나뭇잎· 가을소풍>
등이 있고,
동화에 <제비와 복남· 촛불· 눈보라 속의 우정· 거룩한 선물>
등이 있습니다.
초기의 작품은 주로 민족적 슬픔을 향토적 애상으로 표현하고,
후기의 작품은 천진스러운 동심세계를 찬미, 표출하려는 경향
을 띠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동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색은,
첫째 관용적인 문어체, 재롱등을 구사하거나 영합주의에 안 빠지고,
둘째 선행 · 친애 · 동정 등 도덕심 함양의 방편으로 삼지 않았으며,
셋째 시각적인 효과를 많이 사용한 점입니다.

그리고 주요저서로는
동요 · 동시 · 동화 · 동극을 함께 엮은 《갈닢피리》(靑羽出版社,
1957), 유치원의 어린이를 위한 동화집 《꿈으로 가는 길》(文藝
出版社, 1968)이 있습니다.



자료 , 신요칼럼 정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