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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풍경
나가사키 평화공원 본문
나가사키는 1945 년 8.9 일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한 곳 .
평화공원은 바로 그 근처.
그당시 3일전 히로시마는 1945.8.6 원자폭탄 투여되었지요.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주축국으로서
미국 소련 영국 중국 등이 연합군으로 벌인 세계대전으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함으로 2차 세계 대전이 6년만에 끝나게 되고
우리나라는 45.8.15일 광복을 맞이합니다.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일본에 강제 징용된 한국인과 선량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둘러봅니다
나가사키항은 지리적 위치상
서구의 문물과 천주교가 일찌기 들어오고 많은 외국인 상인들이 입항해 개항을 맞는 중요한 항구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서구의 문물과 개화가 훨씬 빨랐기에 일본이 강대국이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25. 10.14. 화.
고려왕조가 무너지고 새 나라 조선이 세워질 당시, 일본 정치세력의 핵심부인 막부(幕府, 바쿠후)는 1570년 나가사키를 개항했고, 1571년 포르투갈과 통교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중심이 대륙 땅 중국이었던 조선에 비해, 일본은 이역만리 저 먼 곳에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서구라는 신천지의 문물이 나가사키를 통해 흘러들기 시작하자 일본 정치세력은 기존 질서의 교란을 걱정했다.
이에 에도막부는 쇄국 속에서 선별적 개항을 계획했다.
ㅡ KDI경제교육 정보센터ㅡ

나가사키 일본 남쪽 ㅡ옛날 번성했던 작은 항구도시. 언덕. 트램(전철) 발달.
임진왜란 (1592년) 전에 포루투갈인, 네덜란드인 도착.
천주교와 서구문물이 들어옴.

평화기념상
나가사키 출신 조각가가 이 기념상을 제작했으며,
<신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하늘을 가리키는 오른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뻗은 왼쪽손은 ‘평화’를,
살짝 감은 눈에는 ‘원폭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평화의 샘.
원폭투하 당시 뼛속까지 파고든 화상으로
살이 타들어가는 아픔보다
오히려 갈증으로 고통스러워 숨져간 사람들을 위로 하는 명복을 빌기 위해 마련함
낮에는 양쪽으로 하얀 물분수가 뿜어져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날개 모양이라 합니다

마주 보이는 이나사 산 전망대를
저녁에 일몰과 야경을 보러 가게 됩니다

평화공원 입구에 여러 동상들이 서 있는데, 숙연해지는 마음으로 잠시 둘러봤어요

해가 떠 오르는 산

평화기념상
왼쪽옆에 학의 탑
학ㅡ평화를 상징 , 학을 매달아놓았다.

학 ㅡ평화상징


왼쪽은 체코, 오른쪽은 독일이 평화를 기념하기 위해 기부한 조형물

長崎の鐘 (나가사키노 카네)
원폭의 상징 나가사키의 종
나가사키의 종(長崎の鐘)은 피해자 단체가 1977년 8월에 나가사기 평화공원에 설치했다.
카톨릭 교회 우라카미 천주당(浦上天主堂)의 삼종기도(三鐘祈禱),
안젤루스(Angelus)의 종을 모티브로 제작했다.
피폭지인 우라카미 지역의 군수공장에서 일하던 많은 학생들이 희생되었다. 매월 9일 11시 2분에 타종을 한다.

날이 훤히 밝지 않아 사진이 어둡다



천주당이 보이는 언덕이랍니다.
가운데 빨간벽돌 우라카미 성당.
원자폭탄이 터진 성당인데 옮겨와 다시 지은 성당
종 bell 2개중 1개가 남아서 평화의 상징, 기도의 의미를 준답니다

원자폭탄 사망자를 추모 하는 공간이랍니다. 공원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총 15만명이 사망했다고 나옵니다, 가히 상상이 되나요
나가사키시는 천주교 대교구가 있고 작은 성당들도 160여개 되며
일본에서 천주교 신자가 가장 많은 곳이라 합니다







평화공원 안쪽으로 들어가 왼쪽 옆에.
건물이 성당건물 처럼 생겨서 가까이 가보니 상가로 영업중이었어요
일본 같지 않지요?

평화공원 입구.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나가사키 평화공원역 트램(노면전차)
나가사키 네 지역을 돌아보기 위해선, 트램이 가장 좋은데 트램은 1895년 도면전차 도입.
1960년 이후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많은 지역에서 노면전차를 사용했었는데
1970년대 자동차 보급으로 여러지역에서 전차가 없어졌다
나가사키는 다른 지역에서 없어진 전차를 더 많이 가져와 전차가 가장 많은 곳이다
아래 사진은 원자폭탄이 터진 바로 그 곳.
평화공원 옆에 있다.
이곳은 아들이 가보자는데 가지 않았다.
이곳에 한국인 희생자 위로비가 있다
원폭중심공원 자료관도 있다.

원폭중심공원
출처ㅡ 교보생명 공식 블로그
일본 중고생들이 많이 와서
견학을 하고 다녀가곤 한다
원폭 터진 후에 잔재 우라카미 성당
원폭 폭심지에 세워진 공원으로
그당시 여기 희생자 75000명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우리카마 천주당에서 500 미터 떨어져있고 평화공원 바로 근처이다
우리카마 천주당은 1925년 세워졌는데
동양최대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띈 건축물이었는데
원폭으로 천주당 벽돌기둥 일부만 남아 1959년 이전하여 재건 되었다.
성당 내부에는 원폭 투하로 잔해로 남은 성상들과 성당 외부에
머리와 날개가 떨어져 나간 천사상과 잔해로 남은 돌조각을 전시해놓아 참상을 전해준다.
참변을 면한 '안젤라스의 종'은 현재 나가사키의 종으로 불리며
피폭의 공포를 기도로 극복한다는 이미지를 형상화 하고 있다..
나가사키는 일본의 카톨릭성지로 유명하다
메이지유신 전후로 600명의 나가사키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를 했고
크고 작은 성당들이 모여있는 우라카미 지역은 카톨릭교도와 피차별 부락민의 거주지였던 탓에
나가사키의 피폭 경험은 카톨릭교의 핍박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다..
아래 군함도(군칸지마, 하시마) 라고 부른다.
이것은 영화로도 나오고 많이 알려졌다
한국인 강제징용과 관련이 많은 곳이라
인터넷 검색으로 적어본다.


원폭중심공원에서 18.5km 떨어져있는 군함도는 메이지 산업혁명의 유산으로 꼽힌다
1810년 무렵 이근처에서 양질의 석탄이 발견되어,1870년경 소규모로 석탄채집을 한이래
1890 년 미쓰비시가 탄광 경영권을 인수받으면서 본격적인 석탄채굴을 하였는데
1000 m 이르는 해저탄광에서 채굴된 양질의 석탄은 1890년부터 1930년 폐광될 때까지
조선과 제철분야에 이용되면서 일본 산업 근대화에 크게 이바지한다.
작은 인공섬 군함도는 1897년부터 1931년까지 6번의 매립공사를 하면서
남북으로 480m, 동서로 160m 면적 6.3 ha 로 커지는데
군함도의 내부에 일본 최초로 아파트, 수영장 학교 점포 병원 영화관까지 갖춘 계획도시가 된다
1960년 일본의 고도 성장기에 컬러 TV, 콘크리트 아파트가 제공되자
이 작은섬에 5267 명 주민들이 거주하기도 했는데 도쿄 23구 인구의 9배이다.
나가사키항에서 배를 타고 40분 가야하는 작은섬에서 1000 m 해저로 내려가 석탄채굴하는 일은 위험천만한데
지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은 일본 산업 근대화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것을 알 수 있다.
1970년이후 석유가 석탄을 대체하자 폐광되었다.
폐광이후 군함도는 미쓰비시가 소유하고 있다가 지금은 시의 시유지가 되어 관광명소로 활용된다.
2005 년 기자들에게 일부 공개해 군함도가 알려지기 시작해 2009년 4.22부터 군함도는
남부구역을 견학통로로 관광객의 방문을 허용 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공개구역은 허용되지 않아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현장은 접근이 불가하다.
허용된지 한 달만에 4500 명이 넘는 인원이 군함도를 방문한 이래로
군함도는 일본 산업 근대화의 상징으로 활용되면서 2015 년 7.5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
현재 나가사키 시는 군함도 (군칸지마)라는 이름을 붙인 석탄 비스켓 티셔츠 등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기위해 관광상품들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면서 군함도를 알리고 있다.
메이지 산업혁명의 상징인 군함도의 빛나는 영광 이면에는
조선인과 중국인들의 강제노역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은폐되어 있다.
당시 이곳에 수용된 조선인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과
나가사키 형무소에 수감된 죄수들이었는데
고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했고 가혹한 처우가 정당화 되었다
1940년부터 1945 년까지 800 명의 조선인들이 바닷물과 가스가 드나드는 해저 700m~1000m 까지 내려가 석탄채굴을 하였는데 조선인들에게 군함도에 들어가는 통로는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지옥문"으로
통했고 열악한 생활과 환경으로 인해 군함도는 지옥섬으로 불렀다.
10대 초중반의 소년들조차 하루에 깻묵 2개를 배당 받으며 강제노역에 동원 되었고,
작업복도 없이 비좁은 공간에서 12~15시간 노동에 시달렸으며, 잦은 갱도 붕괴 사고로 죽어 나가는 사람도 많다.
군함도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이 발각되면 총살 당하고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는 청소도구를 들고 원폭현장에 나가 청소를 하였답니다.
당시 나가사키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2만명이었는데 이중 원폭으로 1만명이 희생되었답니다
출처 이혜진의 톡톡
나가사키현 전체 인구는 2020년 12월 1일 기준 1,309,143명입니다.
2025년 8월 기준 나가사키시 인구는 약 38만 4,000명으로 보도되었습니다.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 투하 당시 인구는 약 24만 명으로 소개됩니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사망자는 약 7만 5천 명, 부상자는 약 8만 명으로 전해지고
히로시마는 원폭 투하는 45.8.6. 약 14 만명 사망.
한국인은 두 도시 합해서 4만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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