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라, 새로운 숲이 보일 것이니…
6월 말이라서일까. 최근 이런 이메일을 몇 통 받았다. '무르익은 여름을 만끽하러 숲에 자주 갑니다. 숲 사진 잘 찍는 비결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답장을 쓰려고 앉았는데, 의외로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쓴단 말인가. 사실 숲으로 출장을 떠날 때마다 남몰
래 한숨 쉴 때가 많지 않았나. 초록빛 물결, 빼곡한 직선. 숲에선 이 두 가지만 보인다. 그래서 아름답다, 상
쾌하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답답하다. 변화가 없고 단조로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도저히 '그림'이 안 될
때도 종종 있었다.
- ▲ 렌즈(20mm)·셔터스피드(1/30 sec)·조리개(f/5.6)·감도(ISO 400).
보시죠." 써놓고 보니 꽤 그럴듯한 대답이란 생각에 웃음이 피식 났다.
시인들이 자주 쓰는 용어 중에 '낯설게 하기'란 말이 있다. 너무 익숙해서 새로울 것도 참신할 것도 없는
것을 새롭게 표현하는 기법을 일컫는 말이다. 영국의 셰익스피어나 독일의 브레히트 같은 시인들은 바로
이 '낯설게 하기' 기법으로 숱한 걸작을 남겼다. 그런데 이게 꼭 시인의 전유물만은 아닌 것 같다. 사진을
찍을 때도 이 기법은 종종 유용하게 쓰인다.
사람들은 사물을 볼 때 대개 비슷한 눈높이에서 본다. 이걸 깨는 게 의외로 쉽지 않다. 아이는 내려다보고,
어른은 올려다본다. 하늘은 서서 찍고, 꽃은 무릎을 구부려서 찍는다. 이걸 정반대로 해보면 어떨까. 한뼘
더 재미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올해 2월 경남 사천 대숲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대나무는 직선으로 높이 뻗었다. 키가 휘청했다. 이걸 찍
기 위해서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어쩐지 밋밋했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직선만이 프레임에 가득
들어찰 뿐이었다.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답답한 마음에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리곤 대나무를 올려봤더니 아까보다 키가 훌쩍 커 보였다. '엇!' 하
면서 이번엔 무작정 바닥에 드러누워 봤다. 하늘이 한층 더 아찔해 보였다. 대나무는 더더욱 높이 하늘과
맞닿았다. 그 끝도 없는 직선이 더욱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누워서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초록빛 댓잎은
하늘과 햇빛에 부딪혀 더욱 투명하게 찍혔고, 그 길고 가는 몸통도 바닥부터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보였
다. '이거구나' 싶었다.
들꽃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꽃은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지만, 때론 바닥에 누워 찍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밑에서 올려다보며 찍은 꽃은 마치 껑충하게 튀어나온 낯선 생명체처럼 보인다. 작은 개미나 개구리의 눈
엔 꽃이 이렇게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숲 사진을 남다르게 찍는 법. 그건 결국 카메라 렌즈나 조리개의 문제가 아니라 무릎을 얼마나 구부리고
허리를 얼마나 쓰느냐에 있는 셈이다. 움직여라, 시선을 바꿔라. 그래도 영 답이 안 나올 땐 한번 벌렁 드
러누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