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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3 (경회루 수정전 자경전 함화정 향원정 건청궁 집우재 태원전) 본문

궁궐 ,전통 미술 조각

경복궁3 (경회루 수정전 자경전 함화정 향원정 건청궁 집우재 태원전)

미소^^* 2015. 7. 21. 14:31

 

 경복궁 안내지도 (daum 지도)

 

 

 

 

경회루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외국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 1412년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성종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장식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때는 연못안 인공섬에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때 모두 소실되어 경회루 건물은 없어졌는데

경복궁 중건때까지 가뭄이 들었을때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쓰였다

 

 

 

경회루와 치마바위 전설

 

경회루 2층 누각에 오르면 남산 인왕산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중종은 반정에 성공한 후 연산군과 관계된 처가 때문에 단경왕후 신씨를 폐위시켜야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함께한 정분을 잊을 수 없어 가끔 경회루에 올라가

인왕산 기슭에 있는 신씨 집을 바라보곤 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신씨는 경회루에서 중종이 바라볼때 눈에 잘 띄도록 궁궐에서 입던

분홍색 치마를 인왕산 바위에 펼쳐놓았다

중종이 바위에 놓인 그 치마를 바라보며 신씨를 보고 싶은 마음을 삭였다는

치마바위 전설이 경회루와 관련 전하여 진다

 

 

 

흥청망청 기원

 

흥에 겨워 즐기거나 돈을 마구 쓰는 모양새를 일컫는 흥청망청의 유래는

여러가지 있는데 대부분 연산군, 경회루와 관련이 있다

연산군은 조선의 아름다운 여성을 선발해 운평 이라는 기생으로 만들었는데

이들중에 궁궐에 뽑혀온 기생을 흥청이라 하였는데

연산군은 경회루등에서 흥청들과 함께 유흥을 즐겼고

결국 맑음을 일으키는 흥청은 맑음을 망하게 하는 망청이가 되었다

 

 

북악산의 반영이 아주 아름다운 경회루 연못

 

 

 

경복궁 경회루 연못 북편에 자그마한 육각형 정자가 보이는데

경회루의 부속건물처럼 시선을 모으는데

이곳은 하향정이라고 합니다

하향이란 연꽃 향을 말하는데

옛날에는 이 연못에 연꽃이 많이 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향정은 고종4년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당시엔 없던 건물로
경회루 연못가 서북쪽에 있는 4.2평 규모의 육각형 건물이다
하향정은 대목장 74호였던 배희한(1908년-1997년)씨가

1공화국 말기인 1959년 이승만 대통령에 의한 새로 지은 정자이다
정자에서 프란체스카 여사와 대통령이 낚시를 하다가 6.25가 나서
남침보고를 처음 들었다는 얘기도 있고 사진도 남아있다


경복궁 중건도 구 한말이기에 문화재 의원들은

그대로 보존하자고 만장일치로 찬성한다

 

경복궁 복원사업은 1894년을 기준으로 하여

 이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논란이 일어,

이 하향정을 그대로 두느냐 철거나 옮기느냐 논란이 되었는데,

아름다운 운치를 자아내고 60여년이 안되었지만

문화재 위원들이 그대로 보존기로 했답니다 

 

 

 

 

 

 

 

 

경회루는 동쪽으로 교태전과 연결되어 있다

 

 

 

 

 

수정전은 집현전이 있던 곳에 세워진 전각으로

왕이 나랏일을 보던 편전으로 본답니다

집현전은 세조때 없앴다고 하고,

한글창제를 하였는데 

한글 모음은 천지인을 기준으로 했으며

지금 휴대폰 자판도 천지인 자판이라 합니다

 

수정전

 

수정전 후면에는 두개의 굴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온돌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궐내각사 터- 뒤로 인왕산이 보인다

 

 

 

궐내각사 안에 고목들

 

 

경회루에서 향원정 가는 왼쪽 소나무길

 

 

 

북악산이 보이고 아래 청기와 청와대가 보인다

 

 

자경전은 조선후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사업을 하던

고종 4년 1867년

대왕대비 조씨를 위해 지은 전각으로 화재로 불타 고종25년 다시 지었다

보물 809호

자경이란 정조임금이 즉위하면서 그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커다랗게 집을 집고 자경당이라 이름 붙인데서 비롯되었는데,

자경이란 자친 곧 왕이 어머니나 할머니등

왕실의 웃어른이 되는 여성에게 경사가 있기를 바란다는 뜻을 가진다

자경전 정문-두개의 문들은 닫혀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주로 자경전은 꽃담이 있는 후문으로 들어간다

자경전 꽃담

대비전인 자경전의 서쪽담장 외벽에는

매화 천도 모란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등을  색깔이 든 벽돌로 장식하여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자경전 내부-자경전,청연루,협경당으로 이루어졌다 

낮시간에 거처하는 중앙의 자경전과

여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동남쪽의 다락집인 청연루

서북쪽에 필요할 때 난방을 할 수 있는

침실방이며 복을 함께 누린다는 협경당이 있다

 

 

 

자경전 뒷 건물 협경당

 

 

 

십장생 굴뚝

 

해 산 물 구름 바위 소나무 거북 사슴 학 포도 불로초 대나무 국화 새 연꽃 이며

둘레에는 학 나티 불가사리 박쥐 당초무늬를 배치

배 바위 거북등 십장생은 장수

포도는 자손의 번성을, 박쥐는 부귀,나티 불가사리등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이다

 

 

 

 

교태전 후원 아미산 정원 입구 전경

 

왕비의 후원으로 조성된 언덕인데

이곳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산의 이름을 빌어 "아미산"이라 하였다

다양한 화초를 길러 계단식 화단을 꾸미고

교태전 온돌에서 빠져 나가는 굴뚝4개를 (보물811호)를 세웠다

호수나 연못을 상징하는 석함을 두어 산과 호수가 어울어진 풍경을 조성했다

봉황은 왕비를, 박쥐는 부귀를, 매화 국화는 군자의 심성을,

학 사슴 불로초 솔 대 돌등 십장생은 장수를,

아랫단에는 함지와 화분이 놓였는데

함월지는 달이 담긴 호수를

낙하담은 노을 비친 연못을 의미,

계단식 정원은 산을, 돌함지는 호수를,

굴뚝 무늬는 동식물의 생태계를 상징하며

아미산의 정원은 신선이 사는 자연의 세계가 된다

 

 

 

 

 

 

 

 

 

 

 

 

 

 

아미산 정원 후원 나오는 문

 

 

 

함화당과 집경당

 

교태전과 향원정 사이에 후궁들이 거쳐하는 영역

누마루와 침전 행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향원정 풍경을 누마루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고

실제로 중궁전인 교태전이나 대비전인 자경전 보다 좋은 위치에 자리잡아

후궁중 지위가 높거나 대비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

거처할 용도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외국사신을 접견한 기록이 간간히 있고

용도가 명확치 않다

후궁지역은 일제가 몽당 다 밀어버릴 생각이었는데

동궁지역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경영하면서

함화당과 집경당은 사무소로 쓰여 남아 있었다고 하며,

이전에는 추측상 내명부 정1품인 "빈"들이 머물던 곳 이지 않나

한답니다

그것은 월대위에 건물이 지어진 것으로 보아 신분이 높음을,

그리고 아궁이가 있다는 것으로 보아 온돌을 사용했으니,

난방을 사용해줄 정도의 신분이란 의미이다.

왕 왕비 대비전 같은 높은 분들은 건물이름이 "전"에 머물고

세자나 세자빈등 한단게 낮은 사람들은 당에 머무른다는데

당의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신분이 높음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궁인이나 내시들이 지내는 건물에는 아궁이가 없고

깊이 자지말고 부르면 언제든 튀어 오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장고는 점심 시간이 11시 30분-1시까지는 문을 닫아놓습니다

 

 

향원정 

 

 

 

열상진원 샘

연못의 물은 북쪽 언덕 밑에서 솟아나는 샘,

열상진원(차고 맑은 물의 근원이라는 뜻) 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사용하며

지하통로를 통하여 경회루로 흘러간다

 특히 열상진원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곧바로 연못으로 흘러가지 않고

원형의 오목한 작은 웅덩이에 모여있다가 방향을 바꿔

판석 밑으로 해서 연못으로 흘러간다

서류동입(서쪽에서 흘러 동쪽으로 흘러간다)한다는

명당수의 개념을 구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한번쯤 우회함으로써 삶의 여유를 갖는 지혜의 멋을 보는 것이다

 

 

 

 

 

 

 

 

 

 

 

 

 

건청궁

 

집옥재쪽에서 건청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 오른쪽 문 -필성문이 보인다

건청궁은 고종의 궁궐로서 명성황후와 함께 머물던 곳인데

10년 정도 살았고,

 건청궁 옥호루에서 명성황후가 일본군들에게 살해되었다

 

건청궁에서의 마지막 밤과 아관파천

경복궁 전각들중에 궁이라는 이름은 가진 곳은

건청궁이 유일하다.

건청궁은 고종을 위한 궁궐안의 궁이었던 셈이다

을미사변후 고종은 늘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일본이 장악하고 있는 경복궁을 벗어나기 위해

고종은 미국공사관으로 옮겨 가려다 실패하고

1896년 2월11일 새벽에 변복을 한 채 세자만 데리고

궁을 빠져 나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가는데 이를 아관파천이라 하며

그후 조선왕조는 다시는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건청궁 정문

 

 

장안당은 고종의 생활공간으로

사랑채에 해당하는 건물로,

장안이란 오랫동안 평안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건청궁 정문에서 장안당을 들어오는 왼쪽문은 초양문이라 하며,

장안당과 곤녕합을 나누는 담장 사이에 난 사주문이다

초양이란 처음으로 나타나는 양의 기운을 의미한다

 

 

 

장안당과 추수부용루는 궁궐 전각으로

 추수부용루는 가을 물 속에 부용(연꽃)을 볼 수 있는 누각으로

이곳에서 향원정의 풍경을 바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곤녕합은 명성황후가 머물던 안채이고,

누각인 옥호루,

사시사철 꽃향기가 가득하다는 사시향루,

침전인 정시합으로 이루어지며

곤녕함 옥호루로 들어오는 문은 함광문인데,

함광이란 빛을 머금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라는 뜻으로

미덕을 몸에 지니고서 드러내지 않은 상태,

곧 지극한 덕을 지니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곤녕합 옥호루 옛사진

 

 

건청궁 곤녕합 오른쪽 옥호루는,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장소로

시신은 수습되지 못하고,

그날 밤 그들은 왕비의 시신을

건청궁의 뒷산인 녹산에서 불 태웠고

잔해는 향원정에 뿌려졌다합니다

 

 

  이밖에 장안당 뒤에 정화당이 있고,

부속건물로 복수당과 행각이 있고, 녹연당은 상궁이나 나인들의 처소이다

 

 

 

관문각지

 건청궁 장안당 뒤쪽에 위치하며

고종12년에 어진을 봉안하고 관문당에서 관문각이 되었으며

러시아 건축가 세레친 사바틴과 친군영이 공사를 맡아 2층의 서양식 건물로 개축되었는데

최초의 서양관으로,기계추 시계탑도 세워졌다 

세바틴이 관문각에 기거하다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하여 고발 기록도 남겼다

관문각이 헐린 시기는 광무5년(1901년)이후로 보인다

 

 

 

 

 

좌 팔우정- 중앙 집옥재- 우 험길당입니다

집옥재는 고종의 서재로 양옆벽에 벽돌을 쌓고

내부를 중2층으로 만들었다

팔우정은 팔각형의 2층 정자로 중국풍의 요소들을 섞어

이국적인 지역을 형형하며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된다

협길당은 침전으로 사용된 건물로 팔작지붕 양식이다

 

 

 

향원정에서 태원전 오는 길

 

 

 

태원전

 

경복궁의 서북쪽으로 제일 끝부분에 위치하고,

왕실에 돌아가신 분이 있을 때 관을 모셔 두는 빈전,

종묘에 모실때 까지 2년 동안 위패를 모시는 혼전,

돌아가신 분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영전,등 전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태원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이고

신정왕후(조대비)와 명성황후의 빈전으로 쓰였던 경복궁의 빈전이다

나중에는 빈전이나 혼전으로 쓰였다

태원이란 하늘을 뜻하는 말로

국장때 시신을 안치하는 곳이므로

하늘이라는 존칭으로 불렀다

 

 

숙문당(좌측)- 돌아가신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망자의 말씀을 엄숙함으로 듣는다는 뜻을 가진다

 

 

일중문

 

태원전을 들어가는 문을 일중문이라 하는데

해가 하늘 가운데 온다는 뜻으로

사물이 빛나고 창성함을 비유해서 일중문이라 불렀다

 

 

 

 

건숙문

태원전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건숙은 엄숙함을 세운다는 뜻으로 엄숙함을 강조하였다

 

 

경안문

태원전 들어가는 두번째 남문으로

복도각과 연결되어 있는데

복도각은 건숙문을 지나면서 혼백이 지나가는 길이라 한다

 

 

 

천랑 뒤에 보이는 건물이 태원전이며,

천랑은

경안문을 지나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된 통로이다

 

 

 

영사재

 

중간 깊숙히 들어간 별채는 왕비와 후궁들이 제숙하던 곳으로

태원전과 통해있다

영사란 오래도록 생각하여 가슴속에 새겨둔다는 뜻이다

돌아가신 분을 오래도록 그리워한다는 말로

민간에서도 조상이나 선현을 모시는 사당에 영모당이나 영모재 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이다

 

 

 

 공묵재

 

공묵이란 공손히 침묵한다는 뜻으로

임금의 신중하고 과묵한 품성을 나타낸다

태원전 남쪽 행각에 연결되어 있다

 

 

왕실의 장례 왕이 승하하면 5일 동안 혼이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세자가 즉위하고 왕의 시신은 관에 넣어 빈전에 안치한다

국장은 5개월인데 이 기간이 지나면 왕릉에 관을 옮겨 묻고

왕의 혼을 듬은 신주를 혼전에 안치하여 삼년상을 치른다

1년이 되면 첫번째 제사인 연제를

2주기에는 상제를 지내고

그 두달 후에는 담제를 지내 삼년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