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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풍경
창덕궁1 (돈화문, 인정전,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성정각) 본문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창덕궁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궁궐의 정문중에 돈화문이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합니다
태종12년 1412년 세워졌고 1608년 광해군때 중건되었으며
궁궐의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돈화란 백성을 두텁게 교화하다 뜻입니다
창덕궁의 회화나무들이 돈화문을 들어오면 왼쪽에 서 있습니다
창덕궁의 회화나무(천연기념물472)
8그루가 심어져 있다
수령이 무려 300-400년 가까이 되었는데
그중 한그루가 강풍으로 쓰러져 보호받고 있다
금천교
금천교는 1411(태종11년)에 축조된 돌다리다
조선의 궁궐에는 공통적으로 초입부에 풍수지리상 길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그 위에 돌다리를 놓았다
특히 창덕궁의 돌다리는 그 아래 비단 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비단금 내천 자를 사용하는 금천교이다
다리 아래에는 남쪽에 해태상,북쪽에 거북상을 배치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다리 중간에는 중간에는 잡귀를 쫒는 귀면이 조각되어 벽사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서
아름다운 난간석과 견고하고 장중한 축조기술이 돋보인다
금천교 다리 건너는 왼쪽에는 수령이 400여년 이상된 느티나무가 서 있다
금천교 에서 들어오다 보면 좌측
금천교 우측에서 바라본 진선문
금천교 다리 지나면 중문으로 진선문이 있다
실질적인 궁궐로 들어가는 문으로
관리들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직무를 행하라는 의미이고
임금은 선하고 바르게 정사를 돌봐 온 백성이
잘 살 수 있는 정치를 하라는 의미의 문이다
1996년 복원 진선문 우측에 신문고를 달아놓았다고 한다
왼쪽에 인정문이 보이고 정면에는 숙장문이 있다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인정문
중문인 숙장문
창덕궁의 정전 인정전
인정문에서 임금의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했는데
연산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임금이 여기서 즉위했다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등 국가의 중요 행사가 행해진
궁궐의 대표적 공간이다
궁궐의 정전에는 공통적으로 정면에 임금의 용상과
나무로 만든 곳병을 두고 뒤에는 일월오악병을 둘렀는데
일월오악도에는 해와 달, 다섯개의 산봉우리,폭포, 파도,소나무가 그려져있다
천장에는 봉황 한쌍이 그려져 있다
1908년 전기시설이 가설되면서 인정전에 전기가 설치되었다.
왕은 월대를 걸어서 올라가는게 아니고
가마를 타고 올라갔다고 합니다
봉황무늬가 그려진 위로 양 옆에 가마를 들고
왕을 모시고 올라갔다고 합니다
인정전 월대 좌우 가장자리에는 느무 큰 독이 있어서
화재 예방하는 물을 담가 두었다고 합니다
인정문과 인정전은 각각1745년 영조21과 1804년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는 건물로 비교적 오랜 건물이다
인정전 내부
인정전 앞에서 인정문을 향해 바라보니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
인정전을 바라보고 섰을때 전좌우에 회랑이 있는데
오른쪽에 회랑과 내부로 이어지는 문
인정전에서 선정전으로 들어오는 중간 문
문을 나와서 바라본 뒤쪽 우측에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이 보인다
왼쪽에 숙장문
왼쪽 인정전-선정전-희정당-오른쪽 성정각
왼쪽 선정문과 뒤 선정전, 오른쪽 희정당
선정문
창덕궁 편전인 선정전
인조반정때 소실되었다가 1647년 다시 지어진 건물로 지금까지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것은 편전인 선정전이다
오른쪽 밖에서 본 선정전
선정전 내부
선정전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쪽 벽
선정전을 바라봤을때 왼쪽 회랑
선정전 오른쪽 외벽
왼쪽에 큰 독 드므가 보인다
선정전을 나와 희정당 사이 길을 나오면 이런 넓은 정원이 나온다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건물로
선정전이 좁아 편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왕의 침실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보이는 건물은 희정당의 전면으로 행각이고
희정당 본채는 바로 뒤에 있습니다
희정당 정면에서 바라본 뒷 건물
이곳은 ㅁ자 형 건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두어서 행각의 앞과 옆에서 내부를 볼 수 있다
측면에서 바라본 뜰안과 희정당
희정당 내부는 뒷쪽에서 바라보았는데
동양식과 서양식 응접실로 세련되게 꾸며져 있다는데
사진이 후레쉬가 안 터졌는지 선명히 나오지 않아 많이 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희정당 (오른쪽 )과 연결된 대조전으로 들어가는 선평문(왼쪽)
희정당(오른쪽) 대조전(왼쪽) 연결된 뒤에 보이는 복도각
앞쪽에 연결된 복도각
대조전 들어가는 선평문
대조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침전에는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앞에 드므가 네개 있고, 오른쪽 아래 해시계가 놓여있다
대조전 옆에 연결된 흥복헌
이곳은 1910년 8월22일 한일 병합이라는 경술국치를 가져오는
대한제국의 치욕적인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던 곳입니다
한일병합조약에 대한 순종의 전권위임 승인권으로
회의 주변에서 엿듣던 순종효왕후가 국쇄를 치마폭에 숨겼으나 곧 빼앗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로서,우리민족 정신까지 말살 시키려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가
철저하고 치밀하고 잔혹하게 시작됩니다
이곳은 치욕적인 역사가 남아있는 장소입니다.
대조전과 연결된 경훈각
경훈각에 대해서는 누가 언제 사용했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다.
내전 뒤에 있는 것으로 보아 왕과 왕비가 사용하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궐도에 보면 경훈각은 청기와로 된 이층 건물이었다합니다
숙종은 여기서 여름에 휴식을 취했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1917년 창덕궁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대조전과 희정당 복원때 만들어졌다
이상범이 그린 1920년 삼선관파도는 세명의 신선이 바다를 바라보며
나이를 자랑하는 내용의 그림과
조일선관도는 노수현 1920년 그렸는데
순종 황제를 떠오르는 해로 표현해 그렸고
바다 위로 날아오르는 4마리 학을 통해 희망과 기대를 담았는데
두 작품이 경훈각 내에 걸려 있다
왕실의 안녕과 권위를 회복을 기원하는 길상적
상징적 의미가 있어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높다
가장 맨뒤에는 청향각이라는 전각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청향각에서 좌측에 세워진 문인데 닫혀있고 사용하지 않는 문입니다
바로 위에 문 앞쪽으로 또 문이 있는데
이 문도 닫혀있고 왼쪽에 밖으로 나가는 문 (희정당과 선정전 사이) 있습니다
후원으로 화계와 굴뚝 후원으로 나가는 문과 금강송이 있다
범부채가 한창 꽃을 피고 있다
경훈각 후면
대조전과 연결된 복도 행각으로 오른쪽이 경훈각입니다
대조전 후면에 수석이 세워져 있어요
대조전 후원입니다
창덕궁 대조전 후원에 정원과 담장앞에 굴뚝으로
학과 사슴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창덕궁 비원으로 나가는 가운데 문
창덕궁으로 비원으로 나가는 오른쪽 문
대조전옆 흥복헌입니다
참나리꽃이 화단 위에 높게 자리 잡아 꽃무리를 이루었다
이 문은 대조전-흥복헌 뒤에서 희정당 앞으로 나올 때 문입니다
오른쪽 옆에는 성정각 일원과 정원과 담장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희정당의 내부 뜰안
희정당에서 나가는 문입니다
왼쪽 문은 희정당 나오는 문이고
오른쪽 성정각 일원
세자의 동궁 이라 합니다
성정각 일원
이곳은 창덕궁의 동궁 영역으로
세자가 책을 읽고 휴식과 기거하던 곳이다
성정각과 건너편 중희당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칠분서, 삼삼오가 복도로 연결되어있으며
중희당 터 부근에
수많은 동궁 건물이 있었으나
다 철거되고 지금은 이렇게 남아있다고 한다
성정각과 관물헌은 일반 사대부집처럼 지어진 건물이다
영현문과 행각, 사랑채에 해당하는 성정각과
안채에 해당하는 관물헌이 있다
솟을 대문 영현문과 옆에 행각은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성정각 정면 입니다
건물이 길게 배열되서 파노라마로 담았습니다
성정각은 성의와 정성에서 앞글자를 따온 말로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로 한다는 의미있데
그것을 실천하는 집, 즉 학문을 하는 집을 의미한다
왼쪽 건물이 성정각 본채이구요
성정각 들어가는 영현문
영현이란 어진이를 맞아 들인다는 뜻이다
성정각은 익공계 공포(처마와 석가래 특이한 건축양식)를 사용하고 있으며
궁궐 건물로 단청을 입혀 놓고 있다
보춘정
보춘이란 봄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보춘화는 매화꽃의 별칭이다
성정각 옆으로 보춘정이라는 누각이 있고,
보춘정 옆면은 희우루 라고 쓰여있다
희우루는 성정각 동쪽을 말하는데 정조 즉위후에 매우 가물었던 정유년에
이 누각을 중건하기 시작하자 비가 내렸고
또 몇개월 가물었다가 이 누각이 완성되어 임금이 행차하자
다시 비가 내려 희우라는 이름을 지어 기념했다는 내용이 옛기록에 남아있다
희우는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한다는 뜻이다
창덕궁 주합루에도 희우정이라는 정자가 있다고 한다
성정각 뒤에 관물헌
후원 가까운 곳에 조희 라고 쓰여진 현판이 걸려있는 집이 관물헌인데
조희는 계속해서 밝게 빛난다는 뜻으로 세자의 거처라는 것을 의미한다
흥선 대원군과 뜻을 함께 했던 신정왕후는 바로 효명세자의 세자빈인데
효명세자가 지었다는 연경당이 창덕궁 후원에 있다
경희궁에도 조희당이 있었는데 영조의 <집희당시>에서
이 전각은 옛날 세자의 집이라, 집안에 훌륭한 작품들이 새롭구나
계속하여 밝게 빛나니, 어진 이를 높이어 날로 더욱 친하도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이곳은 또한 왕이 자주 머물면서 독서를 하거나 접견을 했던 곳이다
순조의 장자였던 효명세자가 세자로 책봉된 다음 이곳에서 책을 읽은 적이 있고
순종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한때는 덕혜옹주의 생모인 귀빈 양씨가 머물던 집이고
적막하고 고요한 절집 같은 분위기에 빈 뜨락에
담장의 키 큰 나무들이 바라다 보이고
소슬한 바람 한 점.
튓마루에 앉아 생각해보니
어린딸과 생이별을 해야하는 어미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 이후의 삶은 어땠을까...
조선말기의 비운의 흔적입니다
갑신정변때 사방을 한눈에 살필 수 있어 수비가 용이하다는 특성을 이용해
김옥균 일파가 고종을 옹위하고 청나라에 맞서던 곳으로
고종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입니다
성정각이 한때는 내의원으로 쓰였는데
앞에 보호성궁,조화어악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임금의 몸을 잘 보호하고, 임금의 약을 잘 짓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내의원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성정각 일원 밖에서 본 외부 담장
이곳은 봄에 홍매화가 담장에 무척이나 아름답게 핀다
왼쪽에 자시문이 있는데
자시는 만물이 힘입어 비롯한다는 의미로
모든 근본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창덕궁 후원 입구
후원입구와 오른쪽 담장은 창경궁 외벽으로
앞쪽에 함양문이 있어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성정각 건너편에 정조가 세자를 위해 중희당 건물을 건립했고 천문기구 등도 있었다합니다
그러나 중희당 일각이 다 헐리고
왼쪽 복도식으로 된 칠분서, 오른쪽 삼삼오 전각이 있습니다
창덕궁의 동궁영역으로서 후원으로 가는 길에 큰 건물 중희당이 있었고
이 일대가 왕세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순조의 장남인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때 주로 기거 하며 정궁으로 사용했고
많은 건물들이 있었으나 거의 없어지고
왼쪽은 중희당 부속 건물인 칠분서, 가운데 삼삼오 ,
승화루 복도로 연결되어 서고와 도서실로 사용되었다
왼쪽 홍매화 나무가 수령이 400년 이상 되었는데 (선조때 명나라에서 선물 받았다)
봄에 화려한 꽃분홍 꽃을 피운다
삼삼오와 연결된 담장 안쪽 위에 승화루 옆쪽으로 가면 낙선재가 보인다
승화루는 정조때 문효세자를 위해 주합루를 본따서
만든 소주합루를 승화루로 이름을 바꾸고
책과 서화를 모았는데 승화루서목에는
책이 3742권 서화가 665점에 이른다고 전해온다
소주합루는 정조가 중희당을 건립할 때
문효세자(정조의 장자)를 위헤 건립했으나 문효세자가 일찍 사망하자
정조의 독서공간으로 사용했으며
효명세자 또한 일찍 사망하여 빈공간으로 남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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