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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풍경
창경궁 2 본문
창경궁 통명전 후측에서 남산 타워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이곳이 자경전터 부근으로 보이는데요
지대가 높아서 공기도 맑고
앞에 남산도 보이는 전망이어서 터가 좋은 듯 합니다
창경궁 2는 문화재나 보물 위주로 창경궁에 위치한 순서로 동선에 따라 배열합니다
풍기대
풍기대를 이용하여 바람을 관측한 것은 조선 세종 때 측우기의 발명과 더불어 제도화된 것으로 보인다.
바람은 24방향으로 관측했으며, 바람의 세기도 강우량과 같이 8단계로 나누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증보문헌비고 增補文獻備考〉 상위고 권3 중 "대궐 가운데에 풍기가 있는데,
예로부터 바람을 점치려는 뜻에서 창덕궁의 통제문 안과, 경희궁의 서화문 안에 돌을 설치하고
거기에 풍기죽을 꽂아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내용으로 보아 현존하는 경복궁과 창경궁의 풍기대는 1770년(영조 46)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 그후에 제작된 풍기대가 현재 창덕궁의 연경당 앞뜰에 남아 있다.
해시계(앙부일구)
앙부일구는 세종 16년 처음 만들어진 천문의기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의 일종이다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청동의 오목판 안바닥에는 일곱 개의 세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시각선이라고 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이 시각선에 비쳐지면서 시간을 알 수 있다
바닥에는 시각선 이외에 열세개의 가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24절기를 나타낸다
제일 바깥 줄은 동지의 해 그림자가 따라가는 줄이며, 제일 안쪽 줄은 하지선이다
김돈(金墩)의 앙부일구명에는 "무릇 시설 중에서 시간에 관한 것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다.
밤에는 경루가 있으나, 낮에는 시간을 알기 어렵다.
구리를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는데 모양이 솥과 같다.
지름에 둥근 송곳을 설치하여 북에서 남으로 마주 대하게 했으며,
움푹 팬 곳에서 휘어져 돌게 했고, 점을 깨알같이 찍었다. 그 속에 도(度)를 새겨서 반주천을 그렸다.
태실이란 아기가 태어날때 자른 태를 보관하기 위한 시설을 말하는데
자른 태는 태호라고 하는 항아리에 넣는데,
먼저 작은 항아리인 외호에 태를 넣고
외호를 다시 큰 항아리인 내호에 넣은 다음 태실에 보관합니다
가운데 삼각형 모양이 성종대왕 태실 몸체인데,
몸체는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둥근 석종형 몸체를 올려놓고
아름답게 장식된 팔각 지붕 돌을 올리고
보주로 장식하여 조각수법이나 그 정성이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태실안에 있던 태항아리 등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합니다
자경전터는 통명전 뒤에 있었다는데요,
제가 보기엔 창경궁에서 가장 명당자리 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내전터는 춘당지 부근 아래쪽에 있었답니다
내전터
춘당지
창경궁 춘당지 입니다
1909년에 이곳을 내농포라 불렀는데
당시 내농포에는 11개의 논이 있었답니다
논과 뽕밭인데
왕궁에서 농사와 누에치기를 장려하기 위해 실제로
왕과 왕비가 농사일과 양잠을 체험하기 위한 공간이라네요
창경궁 뒷편에 작은 연못이 하나 더 있는데 소춘당지라고 부릅니다
소춘당대는 지금의 창덕궁터의 춘당대와 짝을 이룬 연못으로
춘당대란 예전에 과거 시험을 치룬 곳이기도 합니다
가운데 작은 섬 하나가 보이는데
원래는 없었지만 1984년 만든 인공섬으로 조경적인 측면에서 아름답게 보이고
이때에는 자귀나무꽃이 피었더라구요
겨울에 원앙들이 떼를 이루어 노는 춘당지 입니다
여름이라 많던 원앙은 천둥오리 몇마리가 놀고 있습니다
춘당지 옆에는 팔각칠층 석탑이 있는데
보물 1119호
이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만든게 아니라 중국에서 만든 석탑이랍니다
모양이 일반적인 우리나라 석탑과 달라보이는데
라마탑의 분위기가 나고,
1470년 성종원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대온실
관덕정
관덕정
춘당지 동북쪽 야산 기슭에 사정으로 인조 20년(1642)
취미정이란 이름으로 창건 되었으나 현종 5년(1664)
관덕정으로 개명됨
관덕정은 예기에 활쏘는 것으로 덕을 본다,
쏘아서 정곡을 맞추지 못하면 남을 원망치 말고 제 몸을 반성한다 라는 것에서
이름이 풀이된다
관덕정(觀德亭)은 1642년에 지었으며 활을 쏘던 정자였다.
앞쪽의 넓은 빈터는 군사 훈련과 무과시험장으로 쓰였다고 전한다.
정자 뒤로는 단풍 숲이 우거져서 여러 임금들이 단풍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가 전한다
창경궁 관천대(昌慶宮 觀天臺)는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는 천문기구인 소간의(小簡儀)를 놓았던 돌로 만든 대(臺)이다.
이런 관천대로는 이 유물과 조선시대 한성부 북부 관상감(觀象監) 자리인 옛 휘문중고등학교 자리인
지금 현대건설주식회사 건물 대지 안에 있는 관상감 관천대 두 개가 있을 뿐이다.
이 유물은 조선 후기 숙종때 만들어진 것이며,
사적 296호인 관상감 관천대는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관천대 놓여있는 위치를 몰라서,,,
창경궁의 관리 아저씨께, 춘당지 내전터 앞에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문에서 가까운 문정전 외부쪽에 있다고 해서
춘당지 부근에서 찾다가 반대방향으로 부지런히 걸었네요
창경궁이 좁은 줄 알았는데
걸으면서 넓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가보지 않았던 곳이 또 새로이 나타납니다^^
백송 세그루
이 문은 창경궁쪽 안에서 볼때는 이름도 없어서 찾기 힘들었는데
창덕궁 후원쪽 불로문 앞에 있는 영춘문으로 씌어져 있으며, 창덕궁과 창경궁을
오고 가는 통로 역할을 하던 문으로 보입니다
궁궐에 핀 무궁화 겹꽃이 더위에 피고 지고 합니다
식물원 뒤에서 꽃이 시선을 끌기에 무궁화가 아닌 줄 알았는데
꽃빛도 분홍색으로 예뻤답니다
그외 문들,
월관문
이문을 들어서면 관덕정을 통해 대온실로 직접 이어진다
선인문
홍화문에서 이어진 궁 담장의 남쪽 곧 창경궁 동남쪽으로
에전엔 선린문이라 하며 동궁 정문이었는데 조정의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집춘문
집춘문(集春門)은 관덕정 북쪽, 성균관과 창경궁 사이의 담장에 난 궁문으로 문묘(文廟, 또는 성균관)가 마주 보이는 곳에 있다.
역대 임금들이 이 문을 거쳐 성균관으로 행차하였다.
일제시대때 성균관을 잇는 길을 없애버려 쓸모가 없어졌으나
2008년 성균관을 잇는 길을 종로구에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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