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스마트폰으로
- 휴일 바닷가 풍경
- 폰으로 찍은 사진
- 이순규의 시
- 추석날 오후.성묘
- 오블완
- 입대하던날에 핸폰 사진
- ㅣ
- 작년 국립국악원 연못에서 담은 연꽃
- 스마트폰으로 담은 사진
- 물왕호수
- 물왕벚꽃
- 시흥명품생태관광
- 음악감상
- 티스토리챌린지
- 핸폰으로 담은 요즘 풍경과 트리들
- 핸폰으로 담은 사진
- 시흥시
- 폰으로
- 폰으로 담은 사진
- 예술의 전당
- 장미 시 한편백만송이 장미 노래
- 태풍으로 비가 . 비오는 날
- 시흥명품생태관광지
- 폰으로 담은 보리수
- 친정아버지 5주기 기일
- 학교교정에서
- 폰으로 셀카 담음
- 장마비가 쏟아지는 날에...
- 핸폰으로 담은 사진. 예술의 전당
- Today
- Total
내마음의 풍경
아버지가 친척들에게 베푼 사랑 본문
내 나이 초등 6학년때 여름전까지, 시골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해 여름 방학에 처음으로 충남 논산이라는 시골을 가게 되었다
친정어머니가 충남 대전이 고향이라서
어머니의 형제 자매들은 대부분 충남 대전에서 사는데
둘째딸인 어머니의 위로 제일 큰언니가 충남 논산에서 살았다.
이모집은 마당이 넓은 초가집에 집안 한 모퉁이에는 돼지 우리와 소들이 사는 외양간이 있었다
그리고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저녁을 아주 일찍, 컴컴해지기 전에 먹는다
여름이라 ,마당에 커다란 돗자리를 펴놓고 상을 차려서
집안 식구들이 모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동물들이 살고 있는 그 마당 한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아서 ,밥 먹기가 힘들었다
이모네는 자녀가 일곱명으로 대식구였는데,
사촌언니 오빠들이, 내가 서울서 왔다고
귀한 손님으로 대해주고 즐겁게 보내라고 하면서
시골의 이곳 저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시켜주었다
땅속에서 기어다니는 고슴도치도 처음 보고
산언저리에 하얗고 보라색 예쁜 도라지꽃도 보고
옹달샘에서 두꺼비,청개구리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이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자연그자체 시골 모습은 내게는 충격으로 닿았다
이모집은 인삼밭을 크게 하여 그래도 그 마을에서는 잘 사는 집이었는데
나는 처음으로 와본 곳이라,시골집 환경이 불편하고 이질감에
생각보다 며칠을 못 버티고 서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시골 물이 안맞았는지 내 몸에 두드러기처럼 알러지가 생긴 것이었다.
이모집에는 나보다 한살 나이가 더 많은 오빠가 있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였으니
그오빠는 중학교1학년 이었는데,
중학생이라 해도 그리 키가 크지 않은 소년인데
오빠는 등치가 아주 큰 소를 몰고는 산으로 풀을 먹이려 나간다
그 모습 또한 내게는 아주 놀랍게 보였다.
그 오빠는 늘 하는 일이라 쉽게 산에 소를 데리고 나갔는데
그 오빠가 집에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궁금하기도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후일 그사촌오빠가 서울에서 학생시절에 열심히 공부를 하더니
지금은 고위공무원이 되어 아주 멋있는 삶을 ,
경제적으로도 윤택하게 살고있다
일주일 정도 머물 예정이었는데
이틀후에 서울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시골에서의 생활 체험은 두고 두고 내 머릿속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하나의 쇼킹한 시골에 대한 추억거리가 되었다.
그때 그곳에 가지 않았으면 시골풍경을 접해볼 수 없었는데
내인생에 있어서 시골을 직접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도 하였다
친정 어머니는 어머니 포함 자매 다섯에 동생으로 삼촌이 하나 있다
친정 어머니만 서울서 살고 나머지는 대전에 주로 사시고
큰이모만이 논산에서 인삼밭과 농사를 지으셨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친정식구들에게 지극 정성을 보이면서
어려웠던 시절, 이모들을 많이 도움을 주고 집안에 큰 일을 챙기면서
아들 몫처럼 언니,동생들을 보살펴주었다
아버지 또한 친부모 형제가 이북 황해도에 계시고 없기에
어머니 친정 식구들에게 많이 베풀면서 사셨다
충남 논산에 사는 언니 대가족 아홉식구들
네째 이모네 가족들 여섯 식구들
또 막내이모도 대전에서 살다 서울에 오게 되었는데
결국 서울 사는 나의 아버지,어머니 도움으로 한 집 두 집 서울로 이사오게 되었고
이모네 조카들이 어릴적 우리집에서 몇년씩 같이 살면서
어머니가 조카들이 공부할 때 뒷바라지에 도움을 주었다
지방에서 살다, 서울에 적응이 어려웠는데
어머니는 크게 언니 동생들 가족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친정아버지의 넓은 배려와 사랑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서울로 이사온 큰이모 가족들, 네째 이모가족들, 다섯째 이모는
서울에 살면서 자식들을 대학보내고 반듯하게 키웠다
그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이모들의 어린 자녀들이 지금은 중년의 나이가 되고,
모두들 훌륭하게 잘 자라주었다
재작년 친정아버지가 먼 길 가실 때
이모들 이모부들,또 많은 이종사촌들이,
나의 친정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아버지 가시는 길을 고이 가시도록 많이 힘을 쓰고
나의 아버지 덕분에 서울서 좋은 교육받고 잘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에
삶의 은인으로 참으로 고마움 마음을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형제자매들을 어려울 때 많이 도와주고
힘을 주신 분이시다.
주변 사람들을 커다란 사랑으로 베푸셨던 아버지
그것은 나의 아버지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식사랑뿐 아니라 지인들을 애정으로 대하시고
돌봐주고 베푼 아버지의 사랑은 가히 그 크기를 헤아리기 어렵다
나는 이런 아버지가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마음스케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눈이 소복히 내립니다 (0) | 2011.01.23 |
---|---|
작은 텃밭을 가꾸다가 손 놓은 일 (0) | 2011.01.16 |
문자메세지 인사 (0) | 2011.01.03 |
골든벨 열쇠고리 (0) | 2010.12.29 |
눈이 와서 미끄러운 날엔 (0) | 2010.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