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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갈대ㅡ정병선 저자
스산한 가을과 차가운 겨울이 되어도 갈대는 사라지지 않고 꼿꼿하게 남아 겨울을 나는데,
그 이유를 알지 못했었다.
갈대는 속성으로 자라 어느날 꽃이삭을 달고
씨방끝에 많은 관모를 만들어 종자가 날아가게 하는 그 과정이 있고
묵은 갈대는 그 후의 생입니다
제 뿌리의 끈을 내려놓지 아니하고 겨울을 나고 언 몸을 서로 부딪히면서 서걱거린다.
제 허리까지 쌓인 눈 속에서 추위를 견디고 북풍 휘몰아치는 차디찬 겨울에
빈 몸으로 차디찬 바람을 이겨낸다
할 일이 남아있어 잠들지 못하는 묵은 갈대다
수천 번 수만 번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흔들리곤 바로 서기를 반복하고
다가올 봄에 새싹 틔울 뿌리의 바람막이가 되어 후세가 제대로 새싹을 틔우는지 지켜본다
여름이 다가오면 쑥쑥 자라는 어린갈대의 지지대가 되어
다 자랄때까지 몸을 기댈 수 있도록 기둥처럼 서 있는 묵은 갈대의 절절한 사랑,
흔들리며 사는 까닭이다
꺽이거나 쓰러지지 않고 강한 의지로
어린갈대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묵묵히 지킨다
우리는 갈대를 속이 빈 가벼운 갈대라고 말하곤 한다
줏대가 없다느니 속이 빈 가벼운 갈대 같다느니 , 쉽게 마음이 변하는 사람 비슷하다고...
갈대는 바람에 맞서지 아니하고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바로 서는 지혜,
그 버팀의 힘은 후손을 보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사랑일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후손을 챙기는 알뜰한 정성이다
갖은 역경을 격은 묵은 갈대의 마지막 사는 길도 예사롭지 않다
어느 날엔가 어린갈대가 홀로 버틸 만큼 자라면, "이제 됐다"라는 듯
슬그머니 제 몸을 눕힌다,
선 자리를 후세에 내어주고 누운 채로 새 갈대의 거름이 된다
거룩한 한살이의 마무리와 뜨거운 내리사랑이다
지금은 새 갈대가 성큼성큼 자라고 있고 초록으로 뒤덮이며 어미갈대는 옆에서 보조로 서있다
어느날 어미갈대는 허리를 굽히면서 떠나갈 것이다
문득 어느 늦가을과 차가운 겨울초입 묵은 갈대의 흔들거리는 손짓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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