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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궁궐 ,전통 미술 조각 (196)
내마음의 풍경
교동도의 대룡시장 이곳은 교동도에서 유일한 장터로 황해도 연백사람들이 많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생활의 수단으로서 농업과 어업을 하면서 시장을 형성하였으며 우리나라의 1960.70년대의 풍경이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터입니다 이곳을 보니 어릴적 우리나라의 가옥과 시장이 생각이 납니다 시골이지만 이 방앗간은 내부가 깨끗해보였어요 시계수리점 망향대 가는 길 강을 사이에 두고 강건너 북한이 보입니다 주택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망원경을 통해 자세히 보입니다 철새들이 북에서 남으로 이동해 훨훨 날아가고 있습니다 시골 오지 섬마을의 농촌의 삶과 어업을 하는 사람들 , 그리고 고향땅을 지척에 두고 가슴에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시민들의 애환과 땀이 묻어나는 곳에서... 바로 강건너에는 북한 땅이 보이는 거리로 38..
강화도에서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로 2014년 7월에 개통되었고 그 이전에는 군사보호지역 민통선으로 검문을 하고 배타고 들어갔는데 출입이 쉽지 않았다고 하네요 지금은 대교 들어가기전에 차량출입증을 받고 나올때는 출입증을 반납하고 나옵니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외관 한국 강화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례 받은 것을 계기로 대한성공회는 1900년대 영국의 성공회의 선교인들이 이곳 강화도에 한옥 강화성당을 세웠다고 합니다 성당의 미사형식으로 진행되면서도 영국 개신교에 뿌리를 두었다고 합니다 오늘쪽 지붕이 정문이고, 왼쪽 위에 보이는 문이 후문입니다 그리고 앞에는 좌우 두개의 굴뚝이 세워져 있어요 이 굴뚝은 경복궁 교태전 후원에 아이산의 굴뚝과 모양이 똑같아보여서 웃으면서 바라보았습니다 성당 가는 옆길에 이렇게 담장이..
가운데 큰 섬 강화도, 강화도 왼쪽 위에 우리나라 북서쪽 최북단 교동도, 아랫쪽 작은 섬 석모도가 위치하며 강화도 오른쪽에 김포, 그 오른쪽에 파주가 있습니다 인천 강화도 초지진. 인천 강화 해안가에서는 진, 보,돈대 등 방어를 위한 군사시설을 볼 수 있습니다. 진은 군대에서 대대 개념이고, 보는 중대 규모 정도 , 돈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공격할 수 있는 지역적으로 요세지역이나 해안가의 방어벽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지를 말한다. 강화의 초지진은 지리적으로 한강 유역의 한양에 인접한 내륙입니다 강화 초지진은 해안에 접해있는 내륙초입으로 외적과 항쟁하던 격전지였으며 병인양요- 프랑스의 칩입, 신미양요-미국군 침입, 운양호사건 -일본군 침입( 강화도 조약 체결)등으로 외세의 침입에 시달리며 결국 나라의 주..
큰아이와 함께 걸었습니다 백범 김구 묘역 여전히 푸르름이 많이 보이는데, 일부분 단풍이 물드는 효창공원 산책 하였다. 쳬육대회 참석하고는 점심을 먹고 효창공원을 한바퀴 돌았는데 10월 중순을 넘어가니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공원풍경이다 돌다보니 백범 김구선생님 묘역 표지판이 보여 일부러 찾아가 올라가 보았다 햇빛 바른 곳에 묘역이 아주 잘 조성되어 있다. 어릴때 내 기억에는 김구선생님 동상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여기는 묘역만 보이고 동상은 어디 있는지 더 널리 돌아보지 못했다. 김구 선생님은 황해도 해주 출신이고, 교육자이면서, 진정한 독립운동가 입니다 그당시는 문맹인이 많았던 시대에 사람들에게 글자를 깨우쳐주고 우리말을 가르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우리 독립운동의 두 거두를 들라면 백범 김구와 ..
동궁과 월지를 옛날 시대를 재현해본 구조도인데요 지금은 세개의 누각이 있고 건물은 거의 사라지고 없고 연못의 반영이 아름답지요 황룡사 9층목탑과 황룡사 터 구조도 재현 박물관 내에 월지관에 전시 되어 있던 유물들 월지는 동궁과 월지 ( 구 안압지) 에서 나온 유물을 수집해 보여줍니다 월지에서의 왕족의 삶을 엿볼 수 있고 건축 구조와 재료, 생활용품이 왕족을 알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발전해 나가는 과정의 물건들 석기에서 철기 청동기 문화로 바뀌면서 창,검 등 도구에서 무기를 만들게 되고 사회가 형성되며, 왕권이 확립되어 지배세력이 등장하게 된답니다 박물관 전시물들은 무척이나 많은데 사진을 많이 담아왔어도추려서 올립니다.서울의 국립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 비슷한 물건들인데이곳 경주박물관은 경주에서 나온 물건들을 전시해 놓았답니다 많은 물건들이 경주 월성에서 발굴되어 나왔다는 것이 경주의 신라문화부터 그 이후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알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경주박물관 정문 입구 정문 입구가 중앙에 보이고 안에 들어와서 다시 돌아다본 풍경입니다 성덕대왕 신종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덕대왕 신종-에밀레 종 박물관 본관 건물입니다 박물관 좌측으로 다보탑과 석가탑 모형을 세워두었는데 이날 흐르는 흰구름이 장관이었네요 삼층석탑 신라문화 경주를 자세히 엿보려면경주박물관을 가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지난해에 왔을 때는 이곳을 둘러보지 못했는데이번에는 마지막 일정으로 박물관을 가보았는데 대릉원 초입 좌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릉원에서 한참을 걸어서 들어가면 만날 수 있었던 곳 이곳에서 좀더 들어가면 월정교와 최부자택,교촌마을 향교와 연결이 되어있어서 차로 진입하면 금방 갈 수 있을 것인데 지난번에 왔었을때는 몰라서 그 부근에 갔었지만 자세히 볼 수 없었습니다 집에 오..
수원화성행궁 사적 제478호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되었고,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戰亂), 휴양, 능원(陵園) 참배 등으로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화성행궁은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었습니다. 567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정문 신풍루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의미로 정조의 '화성사랑'을 보여준다 사진의 중양문은 화성행궁의 정당(正堂)인 봉수당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문입니다. 봉수당 화성행궁의 정당인 봉수당입니다. 1795년(정조 19년) 정조가 이곳에서 모친인 혜경궁홍씨의 회갑연을 열면서..